[한국 천주교 역사] 한국 천주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


묵주와 묵주반지 © SISAVIEW
 
2016.7.23
 
[시사뷰타임즈] 대한민국에서는 개신교들이 모두 ‘기독교’라는 말을 쓰고 있다. ‘기독’이라는 말이 Christ(예수)를 음역한 것이고, ‘예수를 믿는다’라는 측면으로만 본다면 기독교가 예수를 믿는 교 즉 예수교라는 말이 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틴 루터가 초기교회 분래의 기독교인 천주교의 의식 모두를 거부하고 오로지 성경(성서)에만 의존하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종교개혁’ 하겠다고 나간 이후, 이들은 protestant(반항자, 저항자)라고 불리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원래 기독교인 천주교에서 빠져나가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라고 하여 ‘개신교(고쳐서 새로 만든 종교)라고 붙여주었다. 남들은 이렇게 부르는데, 정작 개신교에서는 항상 ’기독교‘라는 말을 넣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개신교. 천주교는 그냥 천주교라는 대단히 잘못된 인식을 갖게 만든다.
 
개신교가 ‘성서로만’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성서에 나오는 것을 부정하고 있거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 된다.
 
1.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영성체를 하지 못한다.
 
영성체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마지막 식사를 12제자들과 하는 동안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면서 ‘빵은 나의 몸, 포도주는 나의 피‘라고 정의했으며, “너희는 이 의식을 (반드시) 행하거라” 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준엄한 명령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린 후, 하늘에 올라 하느님 오른 편에 앉으면서 이 세상에 ‘성령’을 보냈다. 성부(하느님) 성자(예수) 성령(하느님의 영)은 삼위일체라고 부르며 동일체이다.
 
신부들이 영성체를 받기 위해 나온 신자들에게 500원짜리 동전만한 빵 조각을 주면서 ‘그리스도의 몸’라고 신자들의 손바닥 위에 주면, 신자들은 ‘아멘’하면서 그것을 영하게 된다.
 
이 영성체 속엔 예수의, 하느님의, 성령이 체화돼있다. 영성체를 많이 모시면 모실수록 예수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과거 외국에서 어느 신부가 “과연 이게 그리스도의 몸일 수 있을까“하고 의심을 품은 일이 있다. 그러자, 이 얇은 500원 짜리 동전만한 것이 실제 살 덩어리로 바뀌었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무조건 실화다.
 
이 신부는 내친 김에, 살이라면 그 속에 피가 있을 것인데 혈액형을 궁금해 하면서 조사를 의뢰한 결과 B형으로 나왔다.
 
이 중요한 의식을 개신교에선 하지를 못하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 오래다닌 사람과 천주교 오래다닌 사람의 피부 느낌은 전혀 다르다.
 
2. 개신교에서는 술과 담배를 금지시키고 있다.
 
어떤 개신교 신자들은, 그러니까 개신교 신자들이 가장 깨끗한 것이라는 말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런데,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혼인잔치를 벌이는 집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때,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든다. 그것도 당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고급 포도주로!
 
이 기적이자 예수가 보여준 사례의 의미는 “인간들이 술을 마셔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담배를 피워도 된다. 그러나, 천주교에선 술을 마시되 지나치게 취할 정도로 마시는 것은 정신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삼가라고 하는 것이고, 담배 또한 몸과 정신 건강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피워야 한다.
 
개신교에서 술을 일절 금지시키는 것은 예수가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라고 한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 된다.
 
3. 개신교에서 천주교를 흉보는 단골 주제가 하나 있다.
 
예수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신이 아닌데 왜 마리아를 믿고 숭배하느냐고 항변한다. 우상숭배라는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건 개신교의 철저한 오해다. 천주교 속에 들어와서 천주교가 마리아를 어떻게 알고 대하는 지를 잠깐이라도 살펴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말하는 것이다.
 
남자 경험이 전혀 없는 마리아에게 하느님은 성령으로 잉태를 시킨다. 그리고 천사들을 시켜 이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예수’라고 부르라고 일러 준다.
 
마리아는 예수를 성령으로 인해 낳은 어머니이므로 성스러운 어머니라 하며 ‘성모’라 부르게 됐고 '성모님, 성모 마리아님'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른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둔 후, 예수를 낳은 것이 ‘무결점’ 마리아이므로 하느님은 예언자 엘리야를 불마차에 태워 산 채로 하늘로 데려갔 듯, 마리아도 하늘로 불러 올려 ‘천상 모후’의 직위에 앉힌다.
 
그렇다고 마리가가 신이 된 것은 아니다. 마리아의 역할은 천주교 신자들이 진지하게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어달라고 하느님에게 간청하는 ‘중개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성모에게 바치는 기도인 ‘묵주기도’를 한다. 자신이 기도하는 것을 성모를 통해 하느님께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를 따로 떼 내어 가지고 별개로 숭배하고 신으로 모시 것이 결코 아니란 사실이다. 마리아를 따로 독자적인 신으로 아는 것이 아닌데 천주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를 동시에 모욕하는 게 될 수 있다. 하느님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생각이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천주교가 대한민국에 어떻게 들어왔고 어떤 수난을 거쳤으며 어떻게 오늘 날에 이르게 된 것인지를 아는 것도 우리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을 아는 게 된다.
 
어떤 자들은 유태인들의 신을 왜 한국인이 믿어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이것은 성서의 창세기를 읽어보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 하느님이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고 코에 생명을 불어 넣음으로써 살아있는 인간으로 만든 것이 애덤 그리고 나아가 하와(이브)이다. 애덤과 하와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다.
 
다윈이 쓰잘데 없고 맞지도 않는 진화론이란 것을 만들어 억지춘향으로 진화론에 가져다 맞추면서 말한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는 말은 우습지도 않은 것이다. 원숭이가 몇 만년을 두고 진화하고 또 진화하여 인간이 된 것이라면, 현재 지구상에 원숭이가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지구 상에는 1천 종이 넘는 각종 원숭이기 지금도 살고 있다.
 
애덤과 하와 이후, 많은 사람들이 불어나고, 바벨탑 이후로 언어가 달라지고 했지만 그 중에서 이즈리얼(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느님이 택했었을 -그러나 이즈리얼 사람들이 너무 속울 썩여 나중에는 버린다- 따름이지 하느님이 이즈리얼 만의 신이 아니다. 하느님은 '만방의 하느님' 이시다.
 
시사뷰타임즈는 이것도 한국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문제라고 사료되어 제대로 짚는 것이며 이 글이 많은 분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다음은 <한국민족대백과>가 정리한 한국의 천주교구와 한국에서의 천주교 역사이다.
천주교교구 [ 天主敎敎區 ]
 
가톨릭교회를 지역별로 구분하는 기본단위.
 
교회행정상의 한 구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래 교구(敎區, diocese)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대교구(大敎區, archdiocese)·대목구(代牧區, vicariate apostolic)·지목구(知牧區, prefecture apostolic)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대목구와 지목구는 포교지(布敎地)에 적용되는 준교구(準敎區) 제도이다. 즉, 아직 정식 교계제도(敎階制度)가 설정되지는 않았으나 정식 교구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의 제자들, 즉 12사도(使徒)의 후계자인 주교(主敎)들에 의하여 관할되는 교구는 다시 좀더 작은 신자 공동체인 본당(本堂)으로 나뉘며, 이 본당에 속한 신자들을 주교의 대리자인 사제(司祭)들이 보살피게 된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교구 몇 개가 모여 관구(管區)를 이룸으로써 지역교회의 완전한 교계제도를 설정하고, 세계 각처의 지역교회들이 다시 전체교회를 이루고 있다.
 
교구라는 말은 본래 로마제국의 행정구역 명칭에서 유래되어 4세기부터 교회에서 통용되었다. 이것이 지역 행정단위를 가리키는 고유한 교회 용어로 굳어진 것은 13세기부터였다.
 
이 후 교구는 ‘교회의 일정한 지역에, 교회의 수위권자인 교황에 의하여 임명된 주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교회법 제369조)’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그 중에서도 ‘좀더 생명력 있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를 강조하여왔다.
 
조선 포교지는 1660년 중국에 난징교구(南京敎區)가 설립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으나, 실제로는 북경의 교회들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결과 1784년에는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의 북당(北堂)에서 세례를 받고 정식 신자가 되어 귀국하면서 조선교회가 창설될 수 있었다.
 
북경교회와 조선 포교지의 관계를 바탕으로 북경교구장이었던 구베아(Gouvea,A.) 주교는 1790년 조선교회의 독립과 보호를 건의하였다.
 
이에 교황청의 포교성성(布敎聖省)은 이 견해를 수용하여 1792년에는 조선 포교지를 북경교구의 교구장 개인에게 위임하는 조처를 취하였다. 그 뒤, 북경교구 교구장이 이러한 역할을 계속 수행하였다. 이로써 조선교회는 북경교구에 속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북경교구에서는 조선교회를 맡게 된 다음 그 첫 조처로 1794년에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주 신부와 신자들의 활동으로 조선교회는 박해가 계속되는 중에도 교세를 확대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1801년의 신유박해로 주문모가 순교하여 조선교회는 다시 평신도만의 교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조선의 신자들은 북경교구에 다시 성직자를 파견해 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1811년에는 교황청에까지 서한을 보내 조선교회의 실정을 알리고 성직자의 필요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곧 그 이전에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의 독립을 건의한 사실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조선교구 설정을 위한 노력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어 1824∼1825년 정하상(丁夏祥)·유진길(劉進吉) 등은 교황에게 서한을 발송하여 ‘조선교회를 위하여 성직자를 파견해 줄 것’과 ‘영속적인 교정대책(敎政對策)을 강구하여 줄 것’을 청원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에서도 그 문제를 적극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조선교회의 독립과 교구 설정을 위한 노력에는 북경주교의 협력과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인 카펠라리(Cappelari,B.A.) 추기경의 호의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선, 북경주교는 조선교회의 사목 책임자로서 이 초창기 교회의 실정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교황청에 전달하는 한편, 그들의 청원을 들어 주도록 요청하기까지 하였다.
 
다음으로 카펠라리 추기경은 교황청 실무자로서 포교성성에 조선신자들의 청원이 접수된 1827년부터 조선교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선교의 임무를 맡아줄 것을 교섭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 교회의 독립이 점점 구체화되어갈 무렵인, 1829년에 샴(Siam)교구의 중심지인 방콕에서 활동하던 브뤼기에르(Bruguiere,B.) 신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때 그는 즉시 조선 포교지로 자신을 파견해 주도록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와 포교성성 장관에게 요청하였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그 해 6월 29일 보좌 주교로 성성되었다. 한편, 1831년 카펠라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그레고리오(Gregorius) 16세로 즉위하였다.
 
그는 교황위에 오른 뒤 조선교회의 독립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마침내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를 설정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조선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하였다. 이로써, 조선교회는 독립교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여 당시 조선교구의 공식명칭은 조선대목구였다. 대목구는 교황대리감목구(敎皇代理監牧區)를 말하는 것으로 교구와 같은 성격을 지니며, 대목구장은 교구장과 같은 권한을 가진다.
 
이 대목구의 주교는 명의주교(名義主敎)로 임명되는데, 조선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도 지금은 없어진 갑사(Capsa)교구의 명의주교였다. 한국교회에 교구의 명칭이 적용된 것은 1962년 3월 정식으로 교계제도가 설정된 이후였다.
 
한편, 조선교구가 설정된 이후에도 파리외방전교회에서는 이 지역을 담당하기를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중국에 이미 진출해 있던 기존의 선교단체들과의 알력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전교회 소속인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교구장에 임명되었고 교황청의 요청도 계속되자, 1833년에 이르러 마침내 이를 수락하게 되었다.

이로써 조선교구를 위한 제반조처가 완료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그 설정의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독립교구로서 스스로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둘째 조선신자들이 염원하던 성직자의 파견이 보장되었다는 점, 셋째 교회조직 안의 교회로서 세계교회와 연결되었다는 점 등이다.
 
교회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는 가운데 설정된 조선교구는 처음부터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입국을 보지 못한 채 1834년 만주에서 병사한 이래, 제2대 교구장 앵베르
(Imbert,L.M.J., 范世亨) 주교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다.
 
제4대 교구장 베르뇌(Berneux,S.F., 張敬一) 주교와 제5대 교구장 다블뤼(Daveluy,M.N.A., 安敦伊) 주교도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순교하고 말았다.

이와 함께 여러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신자들도 형벌을 받거나 순교하였으며, 그 때마다 조선교구는 침체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의 노력으로 조선교구는 1865년 말 한때 약 135개 공소(公所)에 2만 3000여 명의 신자들을 가지기도 하였다.
 
조선교구가 꾸준히 교세를 확대시킬 수 있었던 계기는 1886년 한불조약(韓佛條約)이 체결되고, 전교(傳敎)의 자유가 확보되면서 마련되었다. 비록 이후에도 ‘교안(敎案)’이라는 교회와 일반사회의 갈등,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탄압 등이 있었지만, 박해기간처럼 교구성장의 바탕을 무너뜨리지는 못하였다.
 
그 결과 조선교구는 1911년에 총 신자수가 8만여 명에 달하여 당시 제8대 교구장이었던 뮈텔(Mutel,G.C.M., 閔德孝) 주교에 의하여 교구분할이 추진되었다. 이를 교황청에서 허락하여 그 해 4월 8일에는 대구교구가 분리, 신설되었다. 이 때 조선교구는 경상도·전라도 이외의 지역을 담당하는 서울교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후 한국교회는 교세확대와 함께 새 교구들도 차차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우선, 1909년 서울에 진출하여 교육활동을 전개하던 독일 베네딕토회(芬道會)가 1920년 8월 5일 원산교구를 설립하여 함경도 지역과 간도(間島)일대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다시 1928년 7월 1일 연길지목구(延吉知牧區)와 의란지목구(衣蘭知牧區)가 분할되었다. 그러나 이 두 지목구들은 1946년 4월 11일자로 중국 봉천관구(奉天管區) 소속이 되었다.
 
한편, 원산교구의 함경도지역은 1940년 1월 12일에 함흥교구와 덕원면속구(德源免屬區)로 분리되었으며, 덕원은 대수도원장이 관할하는 면속구(abbatia nullius)로서 계속 베네딕토회(지금의 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처가 있는 동안 한국교회 안에서는 1927년 3월 17일 평양지목구(1939년 7월 11일 대목구로 승격)가 설정됨과 동시에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에 위임되었고, 1937년 4월 13일 설정된 광주지목구(1957년 11월 21일 대목구로 승격)와 1939년 4월 25일 설정된 춘천지목구(1955년 9월 20일 대목구로 승격)는 아일랜드 골룸바노외방전교회에 위임되었다.
 
뿐만 아니라 1937년 4월 13일에는 한국인 성직자가 맡게 된 전주지목구(1957년 1월 21일 대목구로 승격)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제 말기인 1940년대에 들어와서 조선총독부는 일본인 주교들을 한국교회의 교구장에 앉히고자 하였다.
 
이 때 서울교구장이었던 라리보(Larribeau,A.J., 元亨根) 주교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한국인 성직자를 교구장에 앉히려는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며, 마침내 1942년 1월 3일 노기남(盧基南) 신부가 서울교구 제10대 교구장에 임명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구교구와 광주교구의 교구장으로는 일본인 주교가 임명되었다.
 
광복 당시 한국교회에는 9개 교구에 한국인 주교 2명, 외국인 주교 5명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48년 무렵부터 교회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어 점차 지하교회(地下敎會)로 변모되었다.
 
이에 따라 평양교구·함흥교구·덕원면속구 등은 월남한 성직자들에 의하여 명맥을 유지해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남한교회는 교세확대와 더불어 교구수도 증가되어 갔다.
 
1957년 1월 21일 부산대목구가 설정되었고, 이어 1958년 6월 23일 청주대목구와 대전대목구가 독립하였다. 1961년 6월 6일 인천대목구도 신설되었다. 그 결과 1962년에 이르러서는 남한에만 총 9개의 교구가 생기게 되었다.
 
이 처럼 교구가 증가하자 한국 교회에서는 교계제도의 설정을 교황청에 건의하는 한편, 그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마침내는 교황청의 인가를 얻어 1962년 3월 10일 교계제도의 설정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교회의 성장과 자립의 능력을 교황청에서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로써 한국교회에는 정식교구명칭이 사용될 수 있었다.
 
이 때 한국교회는 서울관구·대구관구·광주관구로 구분되었고, 서울·대구·광주 교구들은 모두 대교구(大敎區)로 승격되었다. 그 관할지역은 서울관구가 서울·경기도·충청남도·강원도와 북한 교회를, 대구관구가 충청북도·경상북도·경상남도를, 광주관구가 전라북도·전라남도·제주도를 각각 맡도록 결정되었다.
 
이 후에도 한국교회 안에는 교구들이 계속 설립되었고, 교구장들도 대부분 한국인 성직자들이 맡게 되었다. 우선, 1963년 10월 7일 수원교구가 설립되었다. 이어 1966년 2월 15일 마산교구, 1969년 5월 29일 안동교구, 1977년 3월 2일 제주교구, 1989년 10월 23일 군종교구가 각각 설립되었다.
 
이로써 1999년 현재 한국교회의 교구수는 대수도원장이 관할하는 덕원면속구와 침묵의 교회인 함흥교구·평양교구를 합쳐 모두 18개에 이르며, 그 가운데 한국인 성직자가 17개 교구를, 외국인 성직자가 1개 교구를 담당하고있다.
 
(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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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티 순교 성지 - 최양업 신부의 한국 최초 신학교
  •   sisaview DB입력 2019.9.20.   위치: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71순교자들의 임금이신 주님,영원으로부터 감추어진십자가의 권능과 지혜를제 마음 안에 부어주시어당신의 발자취를 따름으로써 저로 하여금당신의 거룩한 십자가의 종들과 함께당신의 거룩한 마음과지극히 복되신 성모님의 달고 단 사랑과순교자들의 공로를 통하여 현세에서는 전우가 되게 하시고후세에서는 공동 상솎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조선 포교지의 부제최양업 토마스   이 기도는 최양업 토마스 부제가 1847년에 홍콩에서여든 두 분의 기해·병오박해 순교자전라틴어 번역을 끝마치면서 바친 기도이다.  [시사뷰타임즈] 배티 성지는 말 그대로 천주교의 성지 임과 동시에 충북 진천군이 자랑하는 관광명소이자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기도 하낟.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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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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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교구 산막골 성지: 페롱 신부, 황석두 성인이 순교한 곳
  •  sisaview DB입력 2019.5.7.   [시사뷰타임즈]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금덕길 187-15 (금덕리 357-2)에 위치한 산막골 성지는, 기해박해를 피해 천방산으로 깊이 깊이 숨어든 곳 답게 대단히 깊이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승용자 및 승합차는 갈 수 있지만 버스는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길이 좁다. 걸어서 올라가려면 몇 십분을 꾸준히 가야 한다.   오늘 찾아간 산막골 성지는 그동안은 과거 교우촌으로 형성됐던 곳이 거의 다 허물어 질 정도가 된 집 몇 채만 있을 뿐 전혀 성지 같지 않았는데, 서천본당 김종민 신부(사도 요한)이 이곳의 천주교 史的 의미를 깊이 연구해 보다가 충분히 성지로서 가꿀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 성지 개발에 나선 것이어서 현재까지도 십자가의 길 14처, 성모상, 십자고상, 황석두 루카 성인 동상 외엔 다른 것이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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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07
    • 1307
  • 어농 성지 - 주문모 신부의 묘를 모신 곳
  •                                                                                   sisaview DB 입력 2019.2.13.   [시사뷰타임즈] 어농 성지는, 부지가 대단히 방대하며 오르는 도로 길가에 대형으로 십자가의 길 14처 부조상들이 서있다,   또한, 십자가 동산이라고 하여 통나무 두 개를 열 십자로 하여 십자가를 만들어 놓은 것이 부지 내에서 올라가는 길 한 옆에 무수하게 있다.   성지 내에는 죽창을 상징하는 대단히 높고 대형인 조형물이 있고 성모상 앞에는 아기자기하게 자그마한 천사 조각상도 있는 등 성지 전체가 이 세상을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어농 성지에 있는 본당 제대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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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 580
  • 단내 성지: 단내에 이어 남한산성까지 이어진 순교
  •  sisaview DB 입력 2019.2.13.   간략설명 남한산성에서 백지사로 순교한 정은 바오로의 안식처지번주소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단천리 357 도로주소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155번길 38-13전화번호 (031)633-9531팩스번호 (031)634-9530홈페이지 http://www.dannae.or.kr전자메일 dannae-hl@casuwon.or.kr   언덕 위에 건립된 성당 외부.이천시 호법면 단천리에 위치한 단내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광주 유수부인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 바오로(鄭溵, 1804-1866년)와 그의 재종손인 정양묵 베드로(鄭亮默, 1820-1866년)의 고향이자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앞에 단천이 흐르고 뒤에 숲이 울창한 와룡산이 감싸고 있는 단내 성지는 한국 교회사에서 처음으로 성직자를 조선 땅에 영입한 주역 가운데 하나인 순교복자 윤유일 바오로(尹有一, 1760-1795년)의 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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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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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배마실 성지 - 김대건 신부가 자랐던 곳
  •  sisaview DB 입력 2019.2.13.   간략설명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곳지번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810(양지파인리조트 내) 전화번호 (031)338-1702팩스번호 (031)338-1780홈페이지 http://www.euni.or.kr전자메일 yanggi-hl@casuwon.or.kr관련기관 은이 성지 관련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32-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골배마실은 한국 최초의 방인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무덤이 있는 미리내에서 산길로 30리, 찻길로 80리 거리에 위치한 골배마실에서 그 옛날 김대건 신부는 그의 나이 15세 때 신학생 후보를 찾아 헤매던 모방 신부에 의해 장래 조선 교회를 이끌 목자의 재목으로 선택된다. 그리고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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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 442
  • [은이 성지] 김대건 신부 세례받은 곳, 첫 사목활동 한 곳
  •  김대건 신부가 수품받은 상해 김가항 성당을 복원해 2016년 봉헌식을 올린 새 성당 외부.sisaview DB    입력 2019.2.13.   [시사뷰타임즈]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던 곳인데,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은 중국 상해의 김가항(金家巷) 성당이다. sisaview DB  은이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가 어릴 때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던 그 자리에 물방물 모양의 조형물이 있고 이 조형물 속에 세례를 주고 받는 모방 신부와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철판에 구멍 뚫어 새겨놓은 것이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가 첫 사목 활동을 했던 곳이 은이 공소이어서 은이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있다. 그러므로 은이 성지는 천주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의미심장한 곳이다.sisaview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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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3
    • 472
  • 의정부 양주, 성역화 성지화 추진
  •             양주순교성지를 알리는 현수막, 미사시간을 알리는 현수막 그리고 성역회 예정부지의 모습 sisaview DB    입력 2018.11.19.[시사뷰타임즈] 의정부 교구는 양주에서 순교자 5명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이곳을 성역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현재 컨테이너를 하나 가져다 놓고 순례객들이 오면 이 속에서 설명을 하ㅣ기도 하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지원하는 마음’이 필요한 곳이다........    의정부 ‘양주 순교성지’ 선포교구 내 첫 선포, 성지 성역화와 순교자 연구 추진 [가톨릭평화신문: 2016.6.5.] 의정부교구는 5월 28일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위치한 양주 관아터에서 양주 순교성지 선포식을 거행했다. 이로써 양주 관아터는 의정부교구 관내의 첫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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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1-19
    • 1419
  • 죽림동 주교좌 성당
  • sisaview DB  입력 2018.11.19.   [시사뷰타임즈] 이 성당은 ‘주교좌 성당’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역사가 있고 무게감이 있다. 그리고 성당 전반적 모습이 아름답다.   언덕 위에 지어놓은 이 성당은 도로변 자연석 돌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고 언덕을 올라가 본당 주위를 돌아보면, 각종 단풍 든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어서, 단풍 구경을 따로 안가도 될 정도이다.   또한 이 본당 건물은 지을 당시, 우리나라엔 기술자가 없어서 중국인 기술자가 지었다고 하며, 하늘에서 보면 十자 모양으로 지었다.   본당 뒤로 돌아가 보면, 묘소를 마련해 놓았는데, 예전에는 봉분도 있었지만, 주위에서 말이 많아 화장으로 해서 현재의 묘소로 만들었고 차후 이곳을 거치는 신부들이 선종하게 되면 이곳에 안장될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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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1-19
    • 482
  • 송추 성당
  • sisaview DB한자 松楸聖堂이칭/별칭 송추준본당분야 종교/기독교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지역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477-31[교현리 135-1]시대 현대/현대   [정의]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에 있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소속 성당.   [변천]2003년 의정부성당 송추공소에서 출발하여 2010년 9월 14일 송추성당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소속 신자 수가 적고 재정 자립도도 미약한 준본당에 속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일요일에는 오전 11시에 교중 미사가 있으며 수요일 오후 8시,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에 평일 미사가 있다. 토요일 오후 8시에는 토요 특전 미사가 있다.   [현황]송추성당 관할 구역은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울대리, 일영리이다. 현재 주임 신부는 조주환[알베르토] 신부이다. [디지틀 양주 문화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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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1-19
    • 616
  • 춘천교구 > 곰실 공소
  • SISAVIEW DB간략설명 춘천 죽림동 성당의 모체가 된 곰실 공소지번주소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 439-1 도로주소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동내로 220전화번호 (033)262-0695홈페이지 http://juklim.cccatholic.or.kr관련기관 죽림동 성당 (033)254-2631관련주소 강원도 춘천시 약사고개길 23   춘천교구의 요람이자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모체가 된 공소 전경.천주교의 강원도 전래 신해박해(1791년), 을묘박해(1795년)에 이은 신유박해(1801년)을 겪으면서 서울과 경기도에 밀집하여 살던 교우들이 충청도 · 강원도 등의 산간벽지로 숨어 들어갔는데, 이들 중 경기도의 신태보 베드로가 40여 명의 교우를 이끌고 갖은 고생 끝에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으로 피난하여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우촌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강원도 지방에 천주교가 전래된 지 80여 년 동안,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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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1-19
    • 413
  • 의정부교구 > 양주(양주 관아지)
  • SISAVIEW DB / 예수-성모만남 = 가톨릭굿뉴스   간략설명 병인박해 때 순교자를 배출한 경기 북부의 치명지지번주소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233(양주 향교 앞) 도로주소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1423번길 35-12전화번호 (031)841-1866홈페이지 http://www.facebook.com/yjmartyrsshrine문화정보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양주 관아지) 1997년 복원된 동헌 너머로 2017년에 복원된 관아 부속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양주별산대 놀이마당과 유양 초등학교 사이 야산 아래 양주 관아지(楊州官衙址)가 있다. 양주 관아는 1506년(중종 1년) 현재 위치에 설치되어 1922년 시둔면(현 의정부시 의정부 1동)으로 이전될 때까지 417년간 양주목(楊州牧)을 관할한 행정관청이었다. 1871년(고종 8년)에 부천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35개 군의 읍지를 합편한 6책의 필사본인 “경기읍지(京畿邑誌)” 등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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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1-19
    • 442
  • 홍주(홍성) 순교 성지
  •                                                      [SISAVIEW DB]복자 124위 순교지, 홍성 홍주순교성지    입력 2018.10.15.성치 위치: 충남 홍성군 홍성읍 이문길 37-1   [시사뷰타임즈] 현재 홍주라는 지명은 없다. 홍주와 결성이 합해져 홍성이 됐기 때문이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을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홍성 방면으로 약 11㎞를 달리면 홍주성 역사공원에 도착한다. 성곽 810여 m와 건물 6동만 남아있는 이곳이 바로 홍주 순교성지다. 하지만 처음 찾는 사람들은 이곳을 성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잘 꾸며진 솔뫼성지나 해미 순교성지와 달리 홍주성 안은 군청과 읍사무소, 상가 등이 있어 우리네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가톨릭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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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0-15
    • 869
  • 천호성지: 하늘이 부르는 성지···방대한 규모 및 그 다양함
  •  © SISAVIEW위치: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동 905-1    입력 2018.1.23.   [시사뷰타임즈] 서울에 있는 천호동은, 이름을 지을 당시 집이 1천 호가 있어서 천호동이라고 했다는데, 천호 성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과연 한문으로 어떤 뜻인지가 궁금했었다. 이 성지가 있는 동 이름도 천호동이다.   天呼, 하늘 천에 부를 호 즉, 하늘이 부르는 성지라는 뜻이었다.   이 성지는 부지도 방대할 뿐 아니라 피정의 집을 겸한 성지이다. 우선 차를 타고 이 성지의 산자락 주차장에 도착해 보면, 바로 옆에 연못이 있는데, 성서에 나오는 실로암이라는 말이 붙은 ‘실로암 연못’이 있다.   여기서 10분에서 20분 정도를 걸어올라가면, ‘부활 성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순례자들은 대개 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부활 성당이어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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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1-23
    • 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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